KUKJE GALLERY
Geneology on my father
Cho Duck Hyun
Sep 11, 1996 - Sep 25, 1996
K1 Seoul
Introduction
Artist
 

Cho Duck-Hyun is quickly becoming one of Korea's internationally best known artists. His work has a sophisticated understanding of the formal nature of art and he has a shrewd comprehension of art history and cultural hegemony. Metaphors of location abound in his art and for the purposes of this essay I would like to confine muself to touching on some of the moral issues located in his works of the past six years.

For me, as an European. Cho Duck-Hyun's work can best be cast within the gener of history painting. Few artists in the post-Second World War era have made that tradition their field of endeavor. One of the most ambitious projects has been Anselm Kiefer's attempt to rehabilitate German Romanticism after its debasement by the Nazi regime. Through the incorporation of Jewish mysticism. German mythology, cultural figures and sites pertinent to the war. Kiefer has strived to return spiritual possibility to a culture scarred by atrocity. This healing of history also forms the intentions of Cho Duck-Hyun but for a very different set of circumstances.

Cho began his major series A Memory of the 20th Century in 1990. The work of the late eighties dealt with the artist's difficulties with his relationship to the European art traditon. In the series entitled Multivison. Michelangelo's figures clash with Korean contemporary dress. A Renaissance head shares the same ground as a Korean face. Classical ballet dancers pirouette beside a slain peasant. Incongruity and deracination reign.

It is not a coincidence that the first truly historical work was undertaken following a trip to Germany in 1990. The Site - Gate of Brandenburg developed the visual vocabulary for the subseqrent Memory series. Using nine panels in a square configuration. Cho covered eight with topographical maps of South Korea. The center panel holds a drawing of a massacre. Attached to and leaning of the work are a magnifying glass, a candle in a wooden and glass holder, and a pair of wire cutters--objects useful for escape across frontiers. The image and the frame belong to Korea, the tools for freedom belong to everyone. The work reminds us that ideological division that once spanned the world has crumbled, now finding its only and last existence in the DMZ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Cho has created more than thirty works in these series in the last five years. For him, the twentieth century's history is not a dry academic pursuit but a palpable living memory. These works insist on the immedicacy of the events they portray. They are critical of some trends in Korea that attempt to refuse to acknowledge of try to suppress painful incidents of the past century. The proposed demolition of the National Museum building, the official silence about the Kwang-Ju massacre (now this has been broken). Cho sees these activities as detrimental to the health of the nation. The semantics of the series is telling. He sites the story of these events within individual experience. No matter how officials may wish to create the "history", too many of these events remain with the "memory" of individuals and families. The social rift caused by the economic revolution of the past two decades in Korea may herald a new materialism but Cho's suggests that the cost of that gain cannot be paid for by a cultural amnesia masking the pain and suffering of previous generations.

This point is further amplified in the parallel series The History of Korean Women. Here the semantic emphasis is on the official - the status of women and their contribution to the survival and growth of Korea. Their efforts have gone uncelebrated due to their relegated status within a five hundred year old social system. Cho proposes, in the manner of new historicism, that the events associated with the past, and indeed with the future of Korea, are inextricably bound with the fates of these women and that official and social recognition of their important contributions must occur.
Cho's willingness to assume responsibility towards major issues in his country must be appreciated for imaginative and symbolic gesture that it is. Within the highly coded arena of social interchange in Korea, polemics of any nature would not receive a hearing. Cho uses indirection to challenge the existing power structure and its associated assumptions. And like the artist Joseph Beuys, he seeks by a sympathetic act to redress societal imbalance through an art of beauty and composure.

Patrick T. Murphy Director
Institute fo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ilandelphia


정신의 제안
조덕현은 국제적으로 입지를 굳힌 한국의 예술가 그룹에 빠르게 합류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의 형태적 본성에 대한 섬세한 이해력을 소유하고 있고, 미술사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예리한 포용력을 지니고 있으며, 장소에 대한 은유가 풍부하다. 앞으로 이 글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본인은 지난 6년간 그의 작품 속에 자리한 몇가지 정신적인 이슈를 다루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유럽인인 본인이 볼 때 조덕현의 작업은 역사화의 장르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2차대전 이후의 작가들 중 역사화의 전통을 그들의 주력분야로 삼은 작가는 거의 없었다. 가장 열의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나치 지배하에 그 전통의 가치가 격하된 후 독일 낭만주의를 부활시키고자한 안젤름 키퍼의 노력이었다. 유태계 신비주의, 독일의 신화, 그리고 전쟁에 관련된 문호적 인물과 장소들의 총체적 결합을 통해서 키퍼는 잔학 행위에 의해 산산 조각난 문화에 정신적인 가능성을 되돌려 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치유 행위가 상이한 환경에 대한 것이긴 하나 그것이 조덕현의 작업 의도를 형성하고 있다.

조덕현은 1990년에 <20세기의 추억(A Memory of the 20th Century)>이라는 주요 연작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80년대 후반의 작업은 유럽 미술의 전통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어려움을 다루었다. <멀티비젼(Multi-vision)>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시리즈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인물들이 한국인의 현대 의상과 상충되고 있다. 르네상스인의 두상이 한국인의 얼굴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으며, 고전 발레 댄서들이 살해된 농부 옆에 발끝으로 우아하게 서 있기도 한다. 부조화와 절멸이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그의 첫 번째 역사화가 1990년 독일 여행 이후에 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작품<장소-브란덴부르크의 문(The Site - Gate of Brandenburg)>에서는 뒤이어 제작된 <추억>연작을 위한 시각적 어휘를 전개시켰다. 사각의 구조물 안에 9개의 패널을 사용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국의 지형을 담은 지도로 그중 8개의 패널을 덮었다. 중앙 패널은 대량 학살을 그린 드로잉을 담고 있다. 작품에 부착되거나 기대어져 있는 것들은 확대경, 나무와 유리로 된 촛대에 꽂힌 초, 그리고 전선 절단기 - 황무지를 가로질러 도주할 때 유용한 도구들 - 이다. 그 이미지의 프레임은 한국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며, 자유를 위한 도구들은 모든 이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제는 남북한 사이 DMZ안에서의 유일이자 마지막 존재인 이데올로기적 분열의 붕괴를 상기시킨다.

조덕현은 지난 5년간 이 시리즈로 3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20세기의 역사는 메마른 아카데믹한 추구가 아니라 쉽게 만질수 있는 생생한 기억이며, 이 작품들은 그들이 그려내는 사건들의 불치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고통스런 사건들에 대한 인지를 거부하거나 그것을 억누르고자 하는 한국 내의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다. 국립 박물관 건물의 붕괴, 광주 대학살에 대한 공권력의 함구(이제는 깨어진).....조덕현은 이러한 행동들을 국가의 안위에 해로운 것으로 본다. 그는 개인의 경험 속에 이 사건들의 이야기가 자리하게 한다. 이 연작들의 의미는 호소력이 있다. 공권력이 어떻게 "역사"를 창조하든 너무나 많은 수의 이러한 사건들이 개인과 가족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거 20년동안 한국의 경제 혁신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균열이 새로운 유물론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르나, 조덕현의 작품은 그러한 얻음의 대가가 이전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감추고 있는 문화적 기억상실을 보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 여성사>시리즈에서 유사하게 부연 설명된다. <한국 여성사>에서 의미론적 강조점은 공권력 - 여성들의 지위, 한국의 생존과 성장에 있어서 그들의 기여도에 대한 - 에 있다. 그들의 노고는 500년 역사의 사회 체계 안에서 좌천된 그들의 지위로 인해 치하 받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신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작가는 한국의 과거, 그리고 진정 그 미래와 연계를 맺고 있는 이 사건들이 여성들의 운명과 뗄수 없는 고리로 얽혀 있으며, 그들의 중요한 기여도에 대한 공신력 있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산의 고국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들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떠맡고자 하는 작가 조덕현의 태도는 상상과 상징의 제스츄어로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내 사회적 상호 교환의 고도로 코드화된 경쟁 세계 안에서는 본성에 관한 어떠한 논쟁도 경청될 수 없을 것이다. 조덕현은 기존 세력의 구조와 그 연계적 태도에 도전하기 위해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처럼 그는 교감 작용에 의한 아름다움과 평정의 예술을 통해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패트릭 T. 머피 디렉터
현대 미술 인스티튜트 펜실바니아 대학 필라델피아